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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죽은 자의 날’은 왜 슬프지 않을까

by 메스티아 2026. 1. 7.

죽음을 대하는 문화 차이

오늘은 멕시코 ‘죽은 자의 날’이 축제인 이유에대해 이야기해보려한다.

멕시코 ‘죽은 자의 날’은 왜 슬프지 않을까
멕시코 ‘죽은 자의 날’은 왜 슬프지 않을까

 

매년 11월 초, 멕시코의 거리는 해골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해골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즐기며,
무덤 앞에서 웃고, 먹고, 노래한다.

처음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장례가 축제가 되지?”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데 왜 이렇게 밝을까?”

이 질문 속에는
죽음은 슬퍼야 한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
그 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죽은 자의 날’은 어떤 날일까?

죽은 자의 날은 매년 11월 1일과 2일,
가톨릭의 만성절(All Saints’ Day)위령의 날(All Souls’ Day)에 맞춰 열린다.

그러나 이 축제의 뿌리는
스페인 정복 이전의 아즈텍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즈텍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었다.

그래서 죽은 자의 날은
애도가 아니라 재회의 날이다.

왜 해골은 웃고 있을까?

멕시코의 해골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웃고, 춤추고, 화장을 하고 있다.

이 해골들은 칼라베라(Calavera)라 불리며, 죽음을 희화화하는 상징이다.

이 의미는 명확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그렇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다

해골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권력자도
모두 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죽음은 차별하지 않는다.

제단(오프렌다)은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죽은 자의 날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오프렌다, Ofrenda)이다.

가정과 거리 곳곳에 설치되는 이 제단에는

고인의 사진,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 마리골드 꽃, 촛불이 놓인다.

이 제단은 죽은 이를 위한 동시에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장치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 축제는 슬프지 않을까?

멕시코 문화에서
슬픔은 숨길 대상이 아니다.

울고, 웃고, 먹고, 기억한다

이 모든 행위가 애도의 일부다.

침묵과 엄숙함만이 존중의 방식은 아니다.

죽은 자의 날은 말한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웃는다.”

다른 문화와의 결정적 차이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은 개인의 문제이자 조용히 처리해야 할 사건이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죽음이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는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사회 vs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회

이 차이가 축제의 분위기를 만든다.

세계화 속에서 변한 ‘죽은 자의 날’

오늘날 죽은 자의 날은
영화, 패션, 관광 콘텐츠로 소비된다.

해골 메이크업과 퍼레이드가 강조되며
의미가 가벼워졌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하는 한, 죽음은 끝이 아니다.

마무리하며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은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삶 안으로 초대한다.

그래서 이 축제는 슬프지 않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날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해골 분장을 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이 질문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왜 죽음을 이렇게 멀리 두고 있을까?